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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의 복수를 한 할아버지, 다이치 히로 이야기’, 정말 사실일까?

‘손녀의 복수를 한 할아버지, 다이치 히로 이야기’, 정말 사실일까?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떠도는 이야기 중 하나가 손녀의 복수를 한 일본 할아버지 사건입니다. 2000년 일본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이 이야기는 성폭행, 살인과 같은 끔찍한 내용이 담겨 있어 논란이 되고 있죠.

 

  이 이야기에 따르면 아사히 오카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레이코 료코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인 다이치 히로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료코가 행방불명 되고 3일만에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부검 결과 성폭행 당한 후 익사한 것으로 판명되죠.

 

  경찰이 수사에 나서 같은 학교 남학생 5명과 여학생이 범인이었다는 것을 밝혀내지만 해당 학생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벼운 사회봉사 처분만 받습니다. 이에 분노한 료코의 할아버지, 다이치 히로는 료코를 죽인 6명의 학생을 모두 살해한 뒤 자수합니다. 결국 그는 6명의 미성년자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게 되죠. 이 사건은 일본 언론에 보도되어 청소년 보호법에 대해 많은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실존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다이치 히로의 사진)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 같아서 실제 사건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기 쉽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는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먼저 손녀의 이름이 레이코 료코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성이 앞에 쓰이고 이름이 뒤에 옵니다. 그런데 앞에 오는 레이코는 이름으로 쓰이지 성으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카타오카 레이코처럼 뒤에 와야 하죠. 게다가 레이코뒤에 료코또한 이름으로 쓰입니다. ‘히로스에 료코’, ‘시노하라 료코처럼 말이죠. 즉 사람 이름이 + 이름아닌 이름 + 이름’ 로 되어 있는 셈이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할아버지의 이름인 '다이치 히로'의 이름 또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다이치' 와 '히로'가 모두 이름으로 쓰이죠.

 

  실제 레이코’나 '다이치' 라는 희귀한 성이 있거나 실수로 이름을 잘못 쓴 것일 수도 있으니 이 부분을 넘어간다 해도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사건이 일어난 시간입니다. 시간 순서를 차례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00326- 레이코 료코 실종

 

2000330- 레이코 료코의 시신이 발견. 경찰 수사 착수.

 

2000412- 6명의 범인 검거 (다가키 마사오, 이케다 츠지모루, 덴조 아사카,

                          노리오 료우타, 이사무 카츠, 나츠미 란코)

 

20004??- 재판에서 범인들에게 사회봉사 명령 200일과 자택 감금 60일 선고

 

2000414- 선고를 받은 범인들이 풀려남.

                          레이코 료코의 할아버지, 다이치 히로가 나츠미 란코를 살해.

 

        15~18- 다가키 마사오, 이케다 츠지모루, 덴조 아사카, 노리오 료우타 살해.

 

 

 

  위의 표에서 시간 순서 상 모순이 되는 부분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분명 범인들이 검거된 날짜는 412일인데 범인들이 풀려난 후, 다이치 히로에게 살해당하기 시작한 날짜는 414일 입니다. 즉 이 2~3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에 범인들에 대한 경찰 조사와 검찰 기소, 공판을 끝내야 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2~3일 안에 이 모든 것을 끝마치는 것은 북한이나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처럼 즉결심판과 즉결처형이 행해지는 곳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제대로 된 수사기관과 사법 체계를 갖춘 국가라면 2~3일은 경찰조사를 끝내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죠. 대부분의 살인 사건 공판 1년은 족히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건이 현실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이 사건과 관련해서 어떤 기사도 나오지 않았죠. 한마디로 100% ‘낚시글인 셈입니다.

 

 

 

 

만화책 <사이코 메트러 에지>와 영화 <고백>

 

 

  아마도 이 다이치 히로 이야기는 만화 <사이코 메트러 에지>와 영화 <고백>의 스토리를 반씩 가져다 섞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이코 메트러 에지>에는 집단 성폭행을 당한 여중생이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이야기와 매우 흡사합니다. 할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는 여학생이 집단 성폭행을 당하는 설정이나, 할아버지인 전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가 손녀를 죽음으로 내몬 범인들을 살해하는 설정 등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가 닮아있죠. 여기에 영화 <고백>이 지적하는 청소년 보호법의 문제 또한 다이치 히로 이야기에서 똑같이 다루고 있습니다. 위의 두 작품을 찾아서 보시면 이 이야기와 놀랄만큼 똑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최근 들어 이런 다이치 히로 이야기같은 낚시글들이 많이 생겨나는 편이라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정보는 허위 여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낚시글이나 허위 정보들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로 인해 매우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가상의 외팔이 축구선수 '스렉코비치'(왼쪽)

 

 

  축구전문가이자 해설위원인 박문성씨 같은 경우에는 에펨의 신이라는 유저가 최초로 퍼뜨린 낚시글에 속아서 감명을 받은 나머지 자서전에 가상의 축구 선수인 스렉코비치의 이야기를 실은 적이 있었죠. 모든 내용이 허위 사실이었지만 스렉코비치는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세르비아 축구선수의 이름에서 따온 데다가 사진과 이야기가 매우 그럴 듯했기에 박문성 씨가 속아 넘어가고 만 겁니다. 이 때문에 박문성씨는 축구 전문가로서의 명성에 타격을 입게 됐고 한동안 네티즌들의 조롱을 받아야 했죠.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에서 개인 방송을 하고 있는 유명 BJ는 박문성씨보다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경우입니다. 공덕역에서 딸이 실종됐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아버지를 위해 실종된 여대생을 찾는 방송을 해서 여대생과 아버지가 재회하게 됐는데 여기에는 숨겨진 내막이 있었죠. 여대생의 아버지인 줄 알았던 남자는 실제로는 여대생 어머니의 동거남이었던 겁니다. 게다가 여대생이 가출을 한 이유도 남자의 폭행과 학대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방송을 했던 BJ한테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왔습니다. 네티즌들로부터 범인이 피해자를 찾도록 도와줬다는 비난이 폭주해 한동안 정상적으로 방송을 할 수 없었죠.

 

 

 

  앞서 두 사건들을 생각해 볼 때,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했던 일이라도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몰리거나, 직업적인 전문성을 의심 받고 도덕적인 비난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죠. 요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블로그를 가지고 있거나 SNS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정보나 사실을 공유하기 전에 꼼꼼히 확인하고 않으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번 더 조심하고, 한 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이치 히로 이야기처럼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없는지, 출처가 확실한 지, 해당 내용을 보도한 기사가 있는지 정도만 확인한다면 이런 허위 사실로 인해서 피해보실 일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