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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의 오명 '제 2의 단통법?', '도서담합제?'

도서정가제의 오명 '제 2의 단통법?', '도서담합제?'

  2014년 1121일부로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시행이 될 예정입니다. 때문에 이 소식을 모르고 계셨던 분들은 책을 구입할 때, 혼란을 겪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완전 도서정가제로도 불리는 이 법안은 도서 할인율을 제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법적으로 신간은 최대 19% (할인 10% + 마일리지 9%), 구간은 무제한으로 할인이 가능하지만 이것을 구간, 신간 모두 최대 15% (할인 10% + 마일리지 5%) 까지만 할인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죠.

 

  이런 법안이 발의된 취지는 현재 침체기를 넘어서 고사위기에 있는 출판시장을 되살리자는 의도로 보입니다. 무분별한 할인이 출판계를 고사 위기로 내몰고 있으니 이를 제한하고 출판계와 인터넷서점, 동네서점 등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죠.

 

  

 

  이렇게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법안이다 보니 당연히 모두 동참해야 할 좋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도서정가제가 잘 자리잡으면 모두가 상생할 수 있고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만 같죠. 그러나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도서정가제는 제2의 단통법처럼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입니다.

 

  현재 시행될 도서정가제 하에서는 정부가 전면적으로 가격 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 15% 이상 할인을 하는 것만 금지하는 것입니다. 처음 취지와 달리 낮은 가격으로 책을 팔지 못하게 하는 가격하한제가 돼버린 셈이죠.

 

  마치 일률적으로 비싼 가격에 단말기를 구입하게 하는 단통법을 연상케 합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도서정가제라는 이름이 아깝다며 도서담합제로 불러야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도서정가제의 목적이 사실은 책값을 올려서 독서인구를 줄이려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도 들 정도이죠.

 

 

 

 

  이렇게 문제가 많은 법이 시행되게 된 이유는 정부와 국회의 근시안적 사고와 탁상행정 때문입니다. 출판 시장 고사의 근본원인을 정밀하고 자세히 분석할 생각은 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현상인 무분별한 할인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여겨버렸기 때문입니다.

 

  실제 출판시장 고사의 근본 원인은 무분별한 할인 경쟁이 아니라 독서 인구의 감소입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TV와 영화를 보는 시간이 익숙해지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이용한 인터넷 검색이 늘어나면서 활자보다는 영상이 익숙하고, 종이보단 스크린이 편해졌죠.

 

  여기에 주입식 교육으로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독서를 하는 습관이나 독서 후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능력을 길러주지 못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젊은 층의 독서인구가 예전에 비해 크게 감소하게 됐습니다. 현재 미국이나 일본, 영국에서는 젊은 세대들이 종이책이 아니라도 e-book을 이용해서 책을 읽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죠.

 

 

 

 

  이렇듯 독서인구는 90년대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원래대로라면 소비되었을 책들이 재고로 쌓이고 이런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할인 행사, 할인 행사는 다시 출판사 및 중소서점들의 수익률 감소로 이어져 악순환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책값을 할인율을 제한한다는 것은 독서인구의 감소를 더욱 가속화하여 중소 출판사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독서인구가 책값에 소비하는 비용은 그대로지만 책값은 할인율 제한으로 실 구매가가 두 배 가까이 비싸졌으니 구매할 수 있는 책은 줄어들게 되는 거죠. 이렇게 실구매가가 두 배로 오르고 판매량이 반으로 줄면 책을 판매한 출판사는 마진이 두 배로 늘지만 책을 판매 못한 출판사는 고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출판사들이 알아서 가격에 거품을 빼면 도서정가제가 잘 정착이 되고 독자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겠지만 언론에 보도된 출판사들의 태도를 보면 별로 그럴 생각이 없는 듯 합니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돼도 책값은 내리지 않을 거라고 인터뷰를 하는 출판사 관계자도 있고, 우리나라 현재 책값이 원가 빼면 남는 게 없고 외국에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싸다는 기사도 있었죠. 책값이 요즘 나오는 신간의 경우 반값할인을 염두에 두고 가격을 매기기 때문에 50%는 거품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는데 말이죠.

 

  외국에 비교하면 싸다는 말도 잘못됐습니다. 비교대상을 책값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와 일본을 대상으로 비교하니 싸다는 말이 나오죠.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기준으로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은 페이퍼백(일반 표지) 책이 10940(9.81달러), 하드커버(딱딱한 표지) 책이 25040(22.46달러)입니다. 우리나라는 24220원입니다. 하드커버와 비교해도 거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미국의 국민소득은 54979달러이고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25931달러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쉽게 납득이 가질 않을 정도로 비싼 것이죠.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미국의 47% 정도니 책값도 47% 수준인 11770원 정도가 돼야 할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여타 제반 비용을 더한다 해도 15000원은 넘어선 안되겠죠. 이밖에도 수많은 책들이 가격 거품이 끼여 있지만 나머지 내용은 아래 포스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2014/11/24 - 맥주 거품 보다 더한 책값 거품

 

  이처럼 우리나라 책값이 만만치 않은 수준임에도 도서정가제 이후 출판사들의 가격 인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11월 들어 3000종 평균 57% 인하를 한다했지만 이 중 85% 아동 초등서인데다가 나머지도 대부분이 어학, 실용서입니다. 일반 서적은 거의 없는 셈이죠.

 

  현재로서는 추가적인 움직임이 없어 가격 인하가 이루어질 지는 회의적으로 보이나, 아직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조금 더 경과를 지켜봐야할 듯 합니다. 또한 도서정가제도 2의 단통법이나 도서담합제라는 오명을 쓰게 될지, 아니면 앞서 말했던 문제들을 보완하고 잘 정착할지 지켜봐야 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