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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포그의 리뷰/영화

영화 <더 퍼지>로 본 극단적 자본주의의 폐해

영화 <더 퍼지>로 본 극단적 자본주의의 폐해

 

 

 

평점: ★★★

 

 

  법이 사라진 12시간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카피와 독특한 소재때문에 영화 <더 퍼지> 개봉하기도 전부터 많은 이슈가 되었지만  주요 포털사이트의 영화 평점은 좋지 않은 편입니다. 다음은 5.2, 네이버와 네이트는 5.3점이죠.

 

  포털사이트 평점에서 알 수 있듯이 완성도와 작품성 볼 때, <더 퍼지>는 킬링 타임용이 아니라면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입니다. 민폐 캐릭터들과 이들을 이용한 다소 편의주의적인 전개가 이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죠.

 

   주인공 가족에서 딸 조이만 그런 대로 봐줄만 하지만 아들 찰리와 아내 마리는 심각한 민폐캐릭터입니다. 조이는 영화 초반 두 번의 민폐를 끼친 것 이외에는 잠잠하지만, 마리는 후반으로 갈수록 구제불능이 되고, 찰리는 시종일관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죠. 영화 속 위기상황들이 대부분 민폐 캐릭터들의 이런 행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가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영화 내내 유지되는 긴장감이나, 주인공 역할의 에단 호크와 광기어린 악당 역할을 선보인 라이스 웨이크필드의 폭풍 연기가 그나마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거죠.

 

 (영화의 대표적인 민폐 캐릭터인 아내 마리와 아들 찰리) - 영화 <더 퍼지>

 

  다만 이 영화의 주제는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엉성한 스토리 전개와 민폐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영화 <더 퍼지>에는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폐단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죠.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새 숙청의 날이란 제도가 새롭게 자리잡은 미국입니다. ‘숙청의 날이란 1년 중 단 하루 12시간 동안에만 살인을 포함한 모든 범죄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국민들의 억눌린 폭력성과 공격성을 하룻밤 동안 배출시켜 오히려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제도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화 초반 간간히 접하는 뉴스 보도에서 숙청의 날이 하층민에 대한 제거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도망자를 추격해 제임스 가족의 집까지 침입한 악당들의 모습에서 숙청의 날을 핑계 삼아 상류계층의 부자들이 일방적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죠.

 

  '숙청의 날'이란 결국 경제적 능력에 의해서 생존의 자격이 부여되는 인간성이 말살된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인 것입니다. 또한 악당들이 도망자를 부르는 돼지란 단어는 돈이 없으면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격도 박탈 당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악당들에게 쫒기다 주인공 가족의 집으로 숨어드는 도망자) - 영화 <더 퍼지>

 

 

 (가난한 도망자를 추격해 '숙청'하려는 악당들) - 영화 <더 퍼지>

 

 

  이 영화는 단순히 경제적 약자들이 극단적인 자본주의 하에서 비인간화되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우리에게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처음에 악당들의 공격 대상은 집이 없는 가난한 흑인 도망자였지만, 나중에는 주인공 제임스 가족까지 공격당하죠. 제임스는 숙청에 동참한 적은 없지만 숙청의 날정책의 지지자였고 부유한 상류계층이었는 데도 말입니다. 이 영화는 제임스를 통해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상황이 실패자들이나 무능력자들 같은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한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이처럼 이 영화는 극단적인 자본주의가 폐단을 보여주고 있고, 이런 폐단들을 자본주의의 추악한 속성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추악한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입니다. 똑같은 총이라 할지라도 범죄자에 손에서는 사람을 해치는 도구이지만 경찰관의 손에서는 사람을 지키고 보호하는 도구가 되는 것처럼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낱 인간이 만든 도구에 불과하죠. 그것을 쓰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고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영화 <더 퍼지>  세상은 단지 자본주의가 탐욕과 광기에 물든 사람들의 손에서 변형될 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지를 보여줄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 <더 퍼지> 는 조지 오웰의 저명한 소설인 <동물농장>과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더 퍼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동물농장>은 사회주의의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도 말이죠. 자본주의 건, 사회주의 건 간에 인간의 탐욕과 광기가 극단적으로 간 사회는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더 퍼지>는 억지로 볼 필요는 없고, 꼭 봐야할 이유도 없는 영화지만 이미 보고 난 후라면 시간이 아깝다고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과도 비교해 본다면 영화에 투자한 시간이나 비용이 그렇게 아깝게 느껴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