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너스> 법과 진실, 심증과 물증 사이
자력구제란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국가기관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권리를 찾는 행위입니다. 대부분의 법치국가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자력구제를 법률로써 금지하고 있습니다. 예외적으로 긴급한 상황, 위급한 상황에 한해서는 ‘자구행위’라 하여 이를 인정하고 있죠. 즉, 긴급하고 위급한 상황에서만 스스로의 권리를 찾으려는 행위는 도덕적, 법적 면책을 받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긴급하고 위급하다’는 기준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만약 어느날 갑자기 딸이 사라진다면? 그리고 오직 자신의 눈앞에만 결정적인 단서가 포착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런 법적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힘으로 딸을 되찾는 것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영화 <프리즈너스>는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프랭클린의 집에 초대를 받은 켈러 도버와 그의 가족
영화의 첫부분에서 아들 랄프에게 하는 “상시 대비해라.”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인 켈러는 모든 가능성을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는 성격의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불행이 찾아오고 맙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방문한 친구 프랭클린의 집에서 자신의 딸, 애나와 프랭클린의 딸, 조이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애나의 오빠 랄프와 조이의 언니 일라이자가 목격한 내용을 토대로 집 근처에 세워져 있던 캠핑카를 용의차량으로 지목합니다. 그리고 수색에 나선지 얼마 안되어 캠핑카를 타고 도주하려는 용의자를 체포하게 되죠.
그런데 용의자는 알렉스 존스라고 하는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가진 인물입니다. 때문에 강압적인 심문도 거짓말 탐지기도 전혀 통하지 않고 수사는 난항을 겪습니다. 결국 경찰은 증거 부족으로 알렉스 존스를 풀어주고 말죠.
◆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허무하게 풀려나는 알렉스 존스
화가 난 켈러는 홀로 알렉스 존스를 쫓기로 마음먹습니다. 처음에는 감정적인 흥분 상태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추적을 계속할수록 점점 그는 알렉스 존스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죠. 알렉스 존스가 석방되면서 속삭였던 “내가 떠날 때까지 그들은 울진 않았어요.” 라는 말과 밤길에서 애나와 조이가 부르던 노래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부르던 모습은 그가 범인임을 보여주는 확실한 심증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확실하건 불확실하건 간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심증’ 일뿐 법적 효력을 인정받거나 경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없죠.
홀로 알렉스 존스를 추적하다가 홀리 존스의 집까지 이른 주인공, 켈러 도버
때문에 켈러는 혼자 힘으로 알렉스 존스가 범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애나가 있는 곳을 알아내야 합니다. 켈러는 알렉스 존스를 납치한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딸의 위치를 알아내려 합니다. 폭행과 구타, 고문을 서슴지 않죠.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은 영화 <테이큰>이나 드라마 <24시>에서 이미 등장했던 설정입니다. 하지만 <프리즈너스>는 주인공인 켈러 도버는 브라이언 밀스나 잭 바우어처럼 특수요원이 아닌 평범한 남자라는 사실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켈러에게는 브라이언 밀스나 잭 바우어처럼 범인을 추적할 기술이나 정보력이 없습니다. 이들처럼 종횡무진 적을 쓰러트릴 능력도 갖추고 있지 않죠. 화끈한 액션도, 긴박하고 빠른 전개는 기대할 수 없는 인물인 셈입니다. 하지만 <프리즈너스>는 이처럼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을 내세움으로 인해서 영화가 가진 도덕적 딜레마에 더욱 집중하게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켈러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우리에게’, ‘나에게’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자문하게 되죠. 범인을 알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자신에게만 주어진다면, 범인을 고문해서라도 딸의 위치를 알아낼 것인지 아니면 법을 어길 수 없으니 경찰에게 맡겨둘 것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러한 상황에서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인지 묻고자 합니다.
로키 형사에 의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애나
<프리즈너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또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에 끝부분에서 켈러의 아내, 그레이스가 사건을 담당한 로키 형사에게 묻습니다. “남편은 감옥에 가게 되겠죠?” 사실, 로키 형사가 제 시간에 애나를 찾아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켈러가 알렉스 존스를 납치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로키 형사는 내내 범인의 주변만 맴돌면서 진전을 보이지 못하던 상태였죠. 로키 형사는 켈러의 행적을 뒤쫓다가 뜻하지 않게 알렉스 존스를 발견하게 됐고, 그의 숙모인 홀리 존스에게 소식을 전하러 간 것이죠. 그래서 홀리 존스가 애나를 살해하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겁니다.
만약, 켈러가 로키를 비롯한 경찰들에게만 애나를 찾는 일을 맡겨놨다면 법이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을까요? 아마 애나는 제 시간에 찾지 못해 목숨을 잃고, 범인이 누군지조차 밝혀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법은 가혹하게도 켈러에게 유죄를 선고하려 합니다. 법으로는 애나를 구할 수 없었기에,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기에 불가피한 선택을 한 켈러를 법의 테두리를 벗어났다 하여 단죄할 수 있을까요? 영화 <프리즈너스>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정형화된 법과 도덕의 잣대를 이용해 일률적으로 선과 악을 가르고 판단하는 것이 옳은 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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