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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포그의 리뷰/책

<노인과 바다> -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바다 위의 냉혹한 사투

<노인과 바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바다 위의 냉혹한 사투

 

 

 

  동물의 생태와 인간의 생활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출생 후 일정기간 부모의 보호를 받다가 홀로 살아갈 능력이 생기면 부모 곁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해야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동물의 경우 그 홀로 살아갈 능력이라는 게 먹이를 찾고 적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기술이라면 인간의 경우에는 직업이 홀로 살아갈 능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죠. 인간에게 직업은 생계를 해결하고 주위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기반을 만들어주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사회에서 직업은 한 개인을 의존적인 존재에서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조건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황혼기를 맞이한 사람이 자신의 직업에서 물러나 은퇴해야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더 이상 자신의 직업을 유지할 수 없다면 자신은 더 이상 독립적인 존재라는 지위를 잃어버리는 걸까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평생을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왔지만 언제부터인가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게 된 늙은 어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산티아고 노인은 젊은 시절 커다란 청새치도 거뜬히 잡을 수 있었지만 현재는 작은 물고기조차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늙고 힘없는 어부입니다. 매일 새벽녘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지만 늘 빈손으로 돌아오는 탓에 산티아고 노인은 힘 좋고 젊은 어부들은 비아냥과 조롱을 듣게 되죠. 그런 노인을 유일하게 돌봐주는 것은 그에게 처음 고기잡이를 배웠던 한 소년입니다.

 

  마지막으로 물고기를 잡은 날로부터 85일째 되는 날에 노인은 고기가 많은 먼 바다까지 나갈 결심을 합니다. 노인의 배는 너무 작아서 먼 바다에 나가면 풍랑과 조난의 위험이 있었지만 노인은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먼 바다로 나가려 합니다.

 

 

 

 

 

  노인은 단지 생계를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의 비웃음 때문에 더 넓은 바다로 나가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고기잡이는 자신이 평생 동안 직업으로 삼았던 일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 그 자체였죠. 그에게 고기잡이는 자신이 건재하다는 증거였고 자신이 살아있는 한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그런 노인에게 고기잡이를 그만 둔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의미였기에 그는 더 먼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죠.

 

  미끼를 이용해 더 큰 물고기를 유인하는데 성공한 노인은 기세 좋게 물고기와 힘겨루기를 벌이지만 물고기의 힘이 워낙 좋아 고전하게 됩니다. 싸움이 장기화되고 체력에 한계가 오면서 물고기를 포기하고 그냥 쉬고 싶은 생각도 노인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지만 그때마다 노인은 정신력으로 버텨냅니다. 그렇게 이틀 밤낮을 사투를 벌인 끝에 노인은 드디어 자신이 타고 온 배보다 더 큰 물고기 낚게 되죠.

 

 

 

 

  노인의 몸은 손과 등, 어깨 어느 하나 할 것없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는 물고기를 잡은 기쁨에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84일간 아무런 고기도 잡지 못하던 노인의 불운도 여기에서 끝이 나는 것 같죠.

하지만 상어 떼가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어 노인이 잡은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물어뜯습니다. 노인은 용감히 싸우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점차 물고기의 살점을 조금씩 상어에 빼앗기게 되죠.

 

  결국 노인은 물고기의 대부분을 상어에게 빼앗기고 상심합니다. 그가 그토록 큰 위험을 감수하고도 커다란 물고기를 잡은 것은 단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존심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서 한 행위였죠. 때문에 그는 물고기를 자신과 동일시했고 물고기를 잃었을 때, 그는 자존심과 그의 존재 자체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머리와 뼈만 남아 볼품없어진 물고기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 뒤, 노인은 자신을 걱정해 마중 나온 소년에게 말합니다.

 

 

 

  “난 놈들한테 졌단다, 마놀린.” 노인은 말했다. “놈들한테 정말 지고 말았어.”

 

  “그놈한테는 지지 않았잖아요. 잡아온 물고기한테는 말이에요.”

 

  “그래. 그건 정말 그렇지. 내가 진 건 그 뒤야.”

 

- 129p,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문학동네 

 

 

 

  노인은 졌다고 말하지만 소년은 노인이 절대로 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소년과 마찬가지 절대로 노인이 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대한 물고기와 맞서고, 신체적인 한계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노인의 모습에서 불굴의 의지를 엿보게 되고 인간 존재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죠.

 

  거대 물고기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노인이 증명한 것은 독립적인 한 개인으로서,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설사 자신이 독립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해도 불굴의 의지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 홀로 서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는 독립적 인간의 지위를 쟁취해낼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증명해낸 것이죠.

 

 

 

 

  이렇게 마무리 되는 줄 알았던 이 소설에는 반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바닷가 경치를 구경하던 젊은 여자가 노인이 잡아온 물고기에 대해 묻습니다.

 

 

 

  “저게 뭔가요?” 웨이터에게 물으며 여자는 이제 한낱 바다 쓰레기가 되어 물결에 실려

 

떠내려가기만을 기다리는 그 거대한 물고기의 긴 등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티뷰론입니다.” 웨이터가 대답했다. “상어의 일종이지요.”

 

- 129p,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문학동네

 

 

 

   노인은 청새치가 아니라 바닷가에서 가장 거대하고 사나운 티뷰론이라는 상어들의 왕과 싸워서 이긴 것이죠. 그는 자신이 잡은 물고기에게도, 상어에게도 패배하지 않은 것입니다. 상어들의 왕을 잡았으니 말이죠. 뒤이어 여자는 말합니다.

 

 

 

  “상어가 저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생긴 꼬리를 가지고 있는 줄 미처 몰랐어요.”

 

- 132p,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문학동네

 

 

   

  여자는 노인이 유일하게 상어 떼와의 싸움에서 건져올린 부분 중 하나인 꼬리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 노인이 냉혹한 바다에서 보여준 모습이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가를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이죠. 그리고 노인처럼 세월에 의해 많은 능력을 잃어버리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변하지 않으며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죠<노인과 바다>가 인간 존엄을 다룬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불멸의 역작으로 꼽히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