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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포그의 리뷰/책

<앵무새 죽이기> 소외와 차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앵무새 죽이기> 소외와 차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세계의 위대한 명작 소설 no.01)

 

 

 

  성장 소설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들이 읽는 소설이거나 성인들이 읽기에는 조금 수준이 떨어지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육체적인 성장과 정신적인 성장을 혼동하는 데서 오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장 소설에서 성장이란 육체가 아닌 정신적인 성장을 의미하죠.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면 끝이 나는 육체적인 성장과 달리 정신적인 성장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을 걸쳐 이루어집니다. 상실과 이별, 배신을 겪으며 마음의 상처를 입고 이를 극복해 내면서 성숙해 지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과 사랑에서 삶의 중요한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죠.

 

  때문에 정신적인성장을 다루는 성장소설은, 그리고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청소년이나 어린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앨리버마 주의 메이콤 군에 속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스카웃이라는 소설 속 화자가 인권과 평등, 생명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내용입니다.  소설의 화자는 진 루이스 핀치라는 본명보다 스카웃이라는 별명으로 더욱 많이 불리는 7살짜리 어린 소녀입니다. 이야기는 스카웃의 시선을 따라 앨리버마 주에 속한 메이콤 군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죠.

 

  스카웃은 친오빠인 젬과 미시시피에서 온 친구인 딜과 함께 읍내를 돌아다니며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사건들을 겪으며 점차 자연스럽게 톰 로빈슨의 사건을 접하게 되고 이 모든 일들은 스카웃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스카웃의 성장과 더불어 독자들도 가치들에 대해 배워나가게 되죠.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월터 때문에 캐롤라인 선생님에게 혼이 난 스카웃은 하교길에 자신보다 몸집이 작은 월터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하지만 아빠 애티커스 핀치와 오빠 젬에 의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월터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게 됩니다.

 

  약자를 괴롭히면 안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만큼 현실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한 월터를 괴롭히는 스카웃의 모습은 우리는 자기자신의 모습은 어땠는지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죠. 스카웃이 화가 난 이유는 캐롤라인 선생님에게 혼이 난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 스카웃은 캐롤라인 선생님 때문에 화가 난 것이지 월터 때문에 화가 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스카웃의 분노 표출되는 대상은 교사라는 권위가 있고 어른인 캐롤라인 선생님이 아닙니다. 자신보다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한,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약자인 커닝햄 가문의 월터에게 자신의 분노를 투사하게 되죠. 이런 스카웃의 모습처럼 우리도 현실에서 분노를 유발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지는 않았는지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세실과 듀보스 할머니가 스카웃의 아빠인 애티커스 핀치를 검둥이 애인이라며 조롱을 했을 때도 스카웃과 젬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행동합니다. 이때 애티커스 핀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될 없음을 알려주죠. 그리고 사람들의 모욕적인 조롱과 부당한 비난에 폭력이 아닌, 비폭력으로 맞서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이런 애티커스 핀치의 행동은 우리에게 분명한 진리 하나를 각인시켜 줍니다. 누군가 먼저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해서, 나 또한 잘못된 행동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그들의 잘못이 우리 또는 나의 잘못을 정당화 시켜 주거나, 나의 잘못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소설 전체의 주제를 아우르는 핵심적인 사건이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바로 톰 로빈슨 사건이죠. 메이옐라 이웰이라는 백인 처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흑인인 톰 로빈슨은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메이옐라와 그녀의 아버지 밥 이웰의 주장과 달리 수많은 정황 증거들은 톰 로빈슨이 무죄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메이옐라의 오른쪽 눈의 멍자국은 왼손잡이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톰 로빈슨은 오른손잡이일 뿐만에 아니라 왼손에는 장애가 있어 사용할 수가 없죠. 도리어 왼손잡이인 것은 메이옐라의 아버지인 밥 이웰입니다. 증언에서도 메이옐라는 증거와는 모순되는 진술을 하는 반면에 톰 로빈슨이 말하는 내용은 대부분 증거와 일치합니다. 톰 로빈슨은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죠.

  하지만 톰 로빈슨의 주장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톰 로빈슨은 유죄가 선고되자 감옥에서 탈옥을 시도하다 경비원들의 총에 맞고 사망합니다.

 

 

 

 

 

  소설은 톰 로빈슨의 억울한 죽음을 통해 흑백차별과 인종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앵무새 죽이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비단 그것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스카웃의 친구 딜과 부 래들리를 통해 한 발 더 나아가 모든 종류의 차별과 소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죠.

 

  딜의 새아빠와 엄마는 물질적인 면에서는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지만 정작 딜이 필요로 하는 것들은 다른 것들입니다. 바로 그 나이의 아이가 자신의 가족에게 받고 싶은 관심과 사랑이죠. 딜은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몸부림치지만 언제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새로 나온 비싼 장난감처럼 물질적인 것들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죠. 딜의 친구인 스카웃마저 말입니다.

 

  부 래들리는 자신이 철없던 시절 저질렀던 작은 실수에 비해 너무도 가혹한 벌을 받습니다.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다 큰 사고를 일으킨 이후에 수십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하는 것처럼 집에 갇혀 지냈고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 살아야 했죠. 마치 스카웃이 젬과 딜과 함께 하곤 했던 부 래들리 놀이처럼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유령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죠.

 

  흑인이란 이유로 억울한 누명을 쓴 톰 로빈슨, 가족으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는 딜, 한때의 실수로 평생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부 래들리 모두 소외받은 사람들이고 차별에 고통받는 사람들입니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서는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죠.

 

 

 

  그리고 <앵무새 죽이기>는 한 발 더 나아가 차별과 소외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소설 속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스카웃은 소설 속에서 아빠가 정말 옳았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다. 래들리 아저씨네 집 현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고 말을 합니다. 스카웃은 자신이 했던 말처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라도 그들의 편에 서서 이해하려 합니다. 톰 로빈슨을 몰아붙이는 길머 검사와 톰 로빈슨에게 누명을 씌운 메이옐라까지 말이죠.

 

  스카웃의 이런 말과 행동은 우리에게 차별과 소외과 어떠한 경우에 사라질 수 있는 지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바로 타인의 입장이 되어 그들을 이해해 보는 것이죠. 차별을 하는 사람들과,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 모두의 입장이 되어 그들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한다면 차별과 소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 흐르는 시간은 겨우 3년이지만 스카웃은 수많은 사건들을 거치며 30년은 족히 지난 것처럼 정신적인 성장을 합니다. <앵무새 죽이기>를 읽는 독자들도 스카웃의 시선과 그녀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어느새 달라져 있는 자신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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