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선정성 논란,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나? <2부>
지난 포스트에 이어 누가 <걸그룹 선정성 논란,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나?> <2부>에 대한
포스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부의 내용을 보고 싶으시다면 여기 클릭해 주세요.
2. 한국 걸그룹이 하면 선정적, 미국 가수가 하면 섹시?
두번째는 한국의 걸그룹들의 노출은 선정적이고 불쾌하고 비욘세와 마돈나 같은 미국 가수들의 노출은 섹시하다는 논리입니다. 때문에 우리나라 걸그룹들은 민망한 노출은 그만두고 이들의 '진짜 섹시함' 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미국 가수들의 공연이나 뮤직비디오를 한 번이라도 보게 되면 이런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이야기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얼마전 하반신 노출을 감행한 레이디 가가나 생방송에서 비키니를 입고 트워킹을 선보인 마일리 사이러스처럼 미국 가수들의 노출과 무대 퍼포먼스의 수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비욘세와 마돈나도 예외는 아니죠. 만약 우리나라 걸그룹이 이들과 같은 무대를 선보인다면 방송 정지를 당해 한동안 나오지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수위가 낮은 우리나라 걸그룹의 노출은 선정적이고 불쾌하지만, 수위가 높은 미국 가수들의 노출은 섹시하다고 주장하는 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걸그룹의 노출이 불쾌하다면 미국 가수들의 노출은 더욱 불쾌해야 정상이죠.
그럼 노출과 선정성의 요소를 제외하고 실력이나 음악성으로만 본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마돈나와 비욘세를 우리나라 걸그룹과 직접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스타일과 경력 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죠.
비욘세와 마돈나가 추구하는 ‘섹시’와 우리나라 걸그룹들이 추구하는 ‘섹시’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릅니다. 비욘세와 마돈나는 당당하고 좌중을 압도하는 듯한 카리스마가 있는 ‘섹시’를 추구하는 반면 우리나라 걸그룹들은 여성성을 강조하고 부드럽게 유혹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섹시’를 추구하죠.
경력으로 봐도 비욘세는 데뷔한 지 15년이 넘었고 마돈나는 데뷔한지 30년이 넘은 베테랑 가수들입니다. 비욘세, 마돈나와 우리나라 걸그룹을 비교하며 그들처럼 못한다고 깎아내리는 것은 마치 데뷔 3, 4년차의 발라드 가수한테 신승훈이나 김건모처럼 노래를 못부른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승훈과 김건모의 역량은 수많은 무대경험과 연륜으로 더 숙성되고 다져진 것인데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동일선상에 똑같이 놓고 비교 우위를 논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죠.
굳이 비교하고 싶다면 우리나라 걸그룹들은 비욘세와 마돈나가 아니라 스파이스 걸스나 푸시켓돌스에 비교를 해야 합니다. 비욘세나 마돈나는 이효리나 엄정화, 김완선같은 가수들과 비교하는 게 그나마 적합할 겁니다.
이런 부적절한 비교가 나오는 이유는 아마도 본인이 알고 있는 섹시 미국 가수가 비욘세와 마돈나밖에 없을 만큼 미국 음악에 대해 지식이 부족하면서, 오로지 미국 가수와 음악만이 좋은 줄 알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문화 사대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3. 섹시컨셉은 저속하고 청순 컨셉은 본받아야?
마지막으로 섹시 컨셉은 저속하니 지양해야 하고, 청순한 컨셉은 장려하고 본받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줄기차게 섹시 컨셉은 깎아내리고 청순한 컨셉을 옹호하지만 별다른 근거를 대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좀 더 꼼꼼히 따져보면 이런 유형의 칼럼들이 섹시 컨셉을 저속하다고 비난하는 이유는 결국 노출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벗었으니까 노출을 하니까 저속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앞서 성의 상품화에서 이미 이야기 했듯이 섹시 컨셉은 그 내용과 방식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노출과 안무 모든 것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사회적 기준 내에서라면 청순 컨셉과 섹시 컨셉, 어느 것이 낫고 어느 것이 못하다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 취향에 의해 선호하는 컨셉이 있을 뿐이죠.
그럼에도 섹시 컨셉만 유독 비난하는 이유는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정숙함’을 강요하는 전근대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섹시 컨셉의 필수라고 할 수 있는 몸매가 드러나고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고 섹시한 안무를 추는 걸그룹들은 정숙하지 못하고 생각하는 거죠. 반대로 청순한 컨셉의 걸그룹들은 노출이 적은 의상을 입고 순수해 보이는 안무를 추기 때문에 정숙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정숙함이라는 전근대적인 도덕적 가치로 인해 청순한 컨셉의 걸그룹을 높이 평가하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이지 조선시대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사회에 여성들의 옷차림과 몸가짐을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정숙함’이란 도덕적 규율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오늘날의 사회적 기준에서는 과다 노출이나 성적 주요 부위 노출만 하지 않으면 남자든 여자든 자유롭게 옷을 입고 다닐 권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거리에는 흔히 ‘하의실종’ 패션이라고 하는 짧은 핫팬츠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이 넘쳐나지만 아무도 이들에게 손가락질하거나 비난하지 않죠. 걸그룹들의 노출도 사회적 기준 내에서라면 비난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관대한 기준을 적용받는 무대의상에서라면 말이죠.
이런 유형의 칼럼들을 보고 있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습니다. 바로 2012년 여름, 한 여대생에게 성희롱 발언으로 구속되었던 지하철 돌림O 할아버지입니다. 이들 칼럼리스트들의 수준은 그 할아버지의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들은 그 할아버지보다 수십년을 늦게 태어나서 고등 교육을 받았는데도 시대에 뒤떨어져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요.
지금까지 왜곡된 논리로 쓰여진 세 가지 유형의 칼럼을 살펴보았습니다. 성의 상품화 논리와 문화사대주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기대어 있는 것들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런 유형의 칼럼을 쓴 수많은 칼럼리스트들은 모두 잘못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상당수의 칼럼리스트들은 자신들이 쓰고 있는 논리가 왜곡되었고 억지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칼럼들을 쓰는 이유는 바로 돈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광고 수익이죠.
칼럼을 게재하는 인터넷 신문들이 일반 종이신문과는 다르게 구독료를 받지 않는 이유는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기 때문입니다. 칼럼이나 뉴스를 보러 들어온 사람들이 광고를 클릭하면 할수록,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해당 페이지를 보면 볼수록 광고 수익이 증대됩니다. 이들에게는 사람들의 관심이 곧 돈인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인터넷 신문들이 윤리성은 접어둔 채 칼럼리스트에게 무조건 사람들이 많이 볼만한 칼럼을 쓰라고 주문합니다.
그러면 칼럼리스트들은 어김없이 걸그룹 선정성 논란을 주제로 선택하는 거죠. 이들에게 이보다 더 완벽한 주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스캔들이나 각종 사건 사고는 사람들의 관심은 많이 끌지만 칼럼으로 쓰기에는 좋지 않은 주제입니다. 반면 걸그룹 선정성 논란은 우리가 지금껏 살펴본 왜곡된 논리들을 적절히 활용하면 그럴 듯해 보이는 칼럼이 완성됩니다. 게다가 연예인, 노출 등 사람들의 관심도가 가장 높은 키워드가 모두 들어가 있고 대립되는 의견도 많아 논쟁이 벌어지기도 쉽죠.
결정적으로 걸그룹 선정성 논란은 악플러들이 기생하기에 최적의 주제입니다. 악플러들은 순식간에 몰려들어 논란을 증폭시키는 성향이 있어 사람들의 주목도를 단시간 내에 높일 수 있죠. 때문에 트래픽과 광고클릭 등 광고수익에 직결되는 부분에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윤리성을 따지지 않고 수익만을 원한다면 악플러들은 최고의 고객인 셈입니다.
그래서 광고 수익을 위해 윤리성을 포기한 칼럼리스트들은 걸그룹 선정성 논란에 불을 지피며 악플러들의 선봉대장 역할을 자처합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학, 철학, 경제학 방면의 지식을 활용해 악플러들이 편안하게 악플을 달 수 있도록 비난의 근거와 논리를 제공하는 거죠. 그러고는 사회의 윤리성을 지키기 위해 자정작용을 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들 스스로를 위장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숨기려 해도 이들의 정체는 광고 내용에 이미 드러나 있습니다. 칼럼 곳곳에 빽빽이 채워진 광고들을 살펴보면 걸그룹들의 노출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라는 걸 알 수 있죠. 걸그룹들의 선정성을 비판했던 이들이 그보다 훨씬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광고들로 돈을 벌고 있는 겁니다.
과연 이런 이들이 과연 걸그룹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정말로 그들이 걸그룹들의 선정성에 대해 어떤 도덕적,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기를 원한다면 그들 스스로의 도덕성과 윤리성을 먼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2부에 걸친 <걸그룹 선정성 논란,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나?> 를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이스포그의 포스트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포스트가 마음에 드셨거나 도움이 되셨다면 아래 다음뷰와 믹시를 추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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